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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웰 크로슬리 Powel Cro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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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2:53 조회5,0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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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슬리는 1886년 9월 18일, 오하이오주의 신시네티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1905년에는 방과후에 자가용 운전수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자동차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익히게 되었다.
21살이 되던해에 1만달러를 빌려 직접 회사를 차리고 그의 첫 번째 자동차인 6기통 엔진의 "마라톤 식스(marathon six)"를 제작하였다.
이 새로운 차는 당시에 판매되고 있던 다른 차들보다 훨씬 싼가격인 1,700달러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4기통 엔진 자동차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식스 제작을 고집하였고, 1907년 재정적 한계에 부딛치면서 프로토 타입이상으로 발전 시키지 못했다. 결국 마라톤 식스의 생산을 포기하고 말았다.

마라톤의 실패후 크로슬리는 신시네티를 떠나 인디아나 폴리스로 이사하게된다. 그 곳에서 그는 칼 피셔(Carl Fisher) 회사에서 잠깐동안 일하다가  패리 자동차 회사(Parry Automobile Company)의 영업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오래 있지 못하고 내셔널모터 자동차회사(National Motor Vehicle Company)에서 일하다 1910년에는 그의 고향인 신시네티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광고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1912년에는 또다시 그의 회사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1913년 그는 사이클카의 유행을 타고 세 번째 도전을 해보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 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1914년 6기통 엔진 자동차에대한 네 번째의 도전을 해 본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로 돌아가며 크로슬리가 자동차에 뛰어든지 7년사이에 네 번의 실패를 맞게 되었다.

그래서 크로슬리는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는 것에서 관련 악세사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1916년 그는 아메리칸 모터 악세사리 회사(American Automobile Accessory Company)에서 일하게 되었다.
1년에 채 못되어 그는 직접회사를 인수하게 되었고, 2년만에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재벌이 되었다.
크로슬리의 이같은 성공은 유용한 기계장치들은 발명한 그의 능력과 그의 형제인 루이스(Lewis)의 탁월한 사업 수완 때문이었다.
그후 그는 라디오 사업에 뛰어들게 되어 현대적이고 값싼 매스컴 개발에 주력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전기제품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음식을 잡는 것에서 착안한 냉장고 문고리를 비롯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품에 반영되었다.

그의 이러한 성공은 초창기의 실패와 대조적이다.
자동차제작을 빼놓고는 자동차 악세사리, 전기제품들과 발명품들, 이 모두가 그의 발명가적 자질과 세일즈맨적 자질이 모두 뛰어남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지금 미국내에서 효과적인 라디오 산업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자동차산업에도 다시한번 도전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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