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플라미니오 베르토니 Flaminio Bertoni (1903 ~ 1964) > 인물 사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자동차 정보



인물 사전

플라미니오 베르토니 Flaminio Bertoni (1903 ~ 196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1:43 조회6,509회 댓글0건

본문

플라미니오 베르토니는 이태리 태생이지만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힌다. 순수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베르토니는 시트로엥에 강한 개성을 불어넣은 주역이고 그의 정신은 현재 시트로엥 디자인을 총괄하는 르퀘망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03년 이탈리아 북쪽 지방인 바레스에서 태어난 베르토니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던 천재였다. 1918년, 프란체스코 다베리오 공대에 다니던 베르토니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일자리를 찾아 고향 근처의 자동차 보디 제작업체인 카로체리아 ‘마치’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자동차를 향한 열정을 꽃피운 그는 사내에서 곧 실력을 인정받아 기획부서로 옮겼다. 그리고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프랑스 기술자들이 그를 프랑스로 초대하면서 시트로엥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이듬해 이탈리아로 돌아와 개인 작업장을 만들고 카로체리아 ‘바레시나’와 ‘바로피오’를 위해 디자인을 해주며 틈틈이 자신만의 예술작품에 심취한다.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디자인을 하던 베르토니는 이탈리아 국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2차대전 때에는 몇 번 체포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40년에는 오토바이 사고에 이어 여섯 차례의 수술로 왼쪽 다리가 3cm 짧아지는 불운을 겪었다.

1932년에 시트로엥의 제의를 받아 입사한 뒤 처음 디자인한 차가 최초의 앞바퀴굴림 승용차로 알려진 트락숑 아방이다. 역사가들이 ‘플라미니오 베르토니는 이 차를 하룻밤 사이에 얻은 영감으로 디자인했다’고 기록하고 있을 만큼 그의 예술가 기질은 남달랐다. 독특함(unique)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베르토니는 항상 독창적이고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했다. 1934년에 ‘바로피오’에서 제안한 ‘토탈 뷰’라는 관광버스를 의뢰 받았을 때는 평범한 박스형태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서는 유선형의 버스를 제안했다. 더구나 최초로 캐빈 아래에 엔진을 두는 과감한 패키지를 선보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또한 1939년 미니밴 TUB를 디자인할 때 현재의 모노코크 보디 원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이전(1936년)에 ‘에르사’사를 위해 디자인한 세계 첫 3륜차(1954년에 마티스 333으로 나왔다)는 아직까지 수집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베르토니는 스케치를 할 때도 남들처럼 흰 종이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 검은 종이에 흰색 연필을 쓰는 네거티브 스케치를 즐겼고, 표현기법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카디자이너로서 그의 이름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된 때는 1955년이다. 그는 이 해에 ‘달리는 최고의 예술품’이라 불리며 20세기 100대 명차의 반열에 오른 시트로엥 DS19를 디자인했다. DS19의 범퍼 일체형 라디에이터 그릴은 그 뒤 많은 메이커에 영향을 주었다.

1948년에 나와 지금까지 디자인을 놓고 많은 논란이 오가는 시트로엥 2CV는 그 무렵 유행하던 유기적인 형태를 벗어나 원과 직선을 바탕으로 한 기하학적인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트락숑 아방의 후속 모델이 필요했던 시트로엥은 TPV라는 프로젝트를 45년에 시작해 베르토니 주도로 3년 뒤 선보인다. 이때의 디자인 컨셉트는 ‘바퀴 네 개와 우산 한 개’로서, 불필요한 것을 모두 배제한 간결한 디자인이었다.

2CV는 양철판을 재활용해 만든 듯한 주름진 보디와 오토바이용처럼 생긴 헤드램프, 트렁크까지 말아 내리는 천 루프 등을 써서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엔진은 수평대형 2기통 375cc 8마력으로 구조가 간단하고 내구성이 뛰어났다. 시트로엥은 원래 1938년 2CV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1939년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2차대전이 일어나 1948년까지 10년 가까이 발표를 미뤘다. 그러나 오히려 2차대전 직후에 경제적인 소형차를 원하던 프랑스 국민들의 요구와 일치하면서 프랑스 국민차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이 차는 1990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32년 동안 생산되었다.

예술가 기질을 가지고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빛낸 베르토니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가장 존경했고 카디자이너 말고도 조각가, 발명가, 화가,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로마에서 가진 첫 전시회는 동물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60세에 삶을 마감할 때까지 80회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조각에도 관심이 많아 유명한 조각가인 조셉 타라모니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1955년 유네스코가 의뢰한 올림픽 기념 조각, 1956년 엑스포를 위해 만든 조각작품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자동차 디자이너와 미술가라는 두 가지 직업에 만족하지 않은 베르토니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건축을 공부해 건축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가 1956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제안한 현대적 개념의 패밀리 주거 시스템은 획기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발명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자동차용 3중 압력 스프링 등 여러 가지 특허를 따냈고, 이태리 해군에 군함 제조에 관련된 특허를 제안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베르토니는 최고의 카디자이너임이 틀림없다. 그가 디자인한 차 네 대가 20세기를 빛낸 명차 100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디자인한 차는 그가 죽기 3년 전 나온 AMI 6이었다. 이 차를 내놓음으로써 그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마스터 오브 디자인’ 칭호를 받았다. 1964년 그가 죽은 뒤 고향인 바레스에는 기념 박물관이 세워졌고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와 조각 작품 등이 전시되어 관광명소가 됐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물 사전 목록

게시물 검색

접속자집계

오늘
551
어제
477
최대
2,855
전체
860,214
회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전세계 자동차에 대한 역사 이야기 Horseless Vehicl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