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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치오 베르토네 Giuseppe Nuccio Bertone (191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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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1:42 조회6,5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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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치오 베르토네는 이탈리아에서 카로체리아(Carrozzeria)로 잘 알려진 베르토네(Bertone)를 설립(1912년)한 죠반니 베르토네(Giovanni Bertone)의 아들로서, 언제나 회사일에 관심이 많았으며  회계사 자격을 얻고 토리노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누치오는 1933년 19세의 나이로 가업에 뛰어들었다.
마침 피아트508 바릴라를 베이스로 개량한 베르토네차가 인기여서 그는 고객을 찾아 전국을 누비게 되었다.  토리노에서 일하다 다음날에는 남쪽의 발리에, 그 다음날에는 나폴리,저녁에는 로마 등으로 다녔다. 젊기에 여기저기 바삐 움직였고 빈손으로 돌아온 적은 없었다. 누치오의 영업활동으로 30년대초부터 불러닥친 경제공항의 어려움을 이겨냈고 2차대전중에는 앰뷸란스와 군용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1952년 그의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음으로서 자신이 좀 더 관심을 가졌던 일들을 해 나가게 되었다.
누치오 베르토네는 그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였으며, 회사가 성장하고 재정적으로 튼튼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전쟁이 끝난후 재정난을 겪던 베르토네는 1952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한 MG를 이용한 스페셜차량 '세인트 리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시카고에서 자동차판매를 하던 S.H.아놀트2세가 이 차에 반해 MG 개조차 300대를 주문했고, 아놀트와의 거래가 베르토네를 되살리는데 큰 힘이 되었다.
1954년에는 누치오 베르토네는 알파로메오의 쥴리에타 스프린트(Giulietta Sprint- 하루 32대가 생산되었던차)를 디자인하기로 계약을 하였다. 피아트가  300대를 주문한 이차는 4만대 판매를 기록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다.
그 후 베르토네의 이름은 프랑코 스칼리오네(Franco Scaglione),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io Giugiaro),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와 같은 카 디자이너들을 영입하여, 자동차 디자인업계의 선두를 다지게 되었다.
그는 1934년에 파리 오토쇼에서 발표된 알파로메오 2.3을, 1954에는 1967년까지 생산되어 지금까지 유명한 알파로메오의 쥴리에타 스프린트를 디자인하였으며, 람보르기니 미우라(Miura)와 총 140,000대가 생산되었던 피아트 850 스파이더즈(Spiders)를 1967년에 디자인하였다. 1968년에는 람브레타(Lambretta)와 중앙에 엔진이 장착된 V8 알파로메오를 디자인하였으며, 1971년 람보르기니의 카운타크(Countach)을 디자인했다. 1976년에는 80년대 그의 이름을 북미 대륙에 널리 알리게된 피아트의 X1/9을 디자인하였다.
또 다른 유명차들로는 란치아의 스트라토스(Stratos), 람보르기니의 에스파다(Espada), 이노센티(Innocenti) Y10와 수 개의 시트로엥 모델들이 있다.
그는 1997년 2월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갔지만 베르토네의 이름은 이탈리아 최고의 디자인업체로서 남아 있으며, 강력하고 우수한 스타일리스트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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