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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르퀘망 Patrick Le Qu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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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1:34 조회6,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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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자동차 전문지인 <아우토모빌리아>(Automobilia)는 시대를 빛낸 카 디자이너로 베르토네, 피닌파리나, 쥬지아로, 벤츠의 부르노 사코 등과 함께 르노의 파트릭 르퀘망을 꼽았다. 르 퀘망은 두 개의 직함을 갖고 있다. 현재 르노 디자인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고, 닛산의 디자인 컨설팅 담당 임원이기도 하다.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난 르퀘망은 부모님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버밍햄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자동차 디자인과 인연을 맺게 된다. 1966년 대학을 갓 졸업한 르퀘망이 들어간 첫 직장은 1964년 유럽 크라이슬러가 영국 루트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작은 자동차 메이커 심카(SIMCA)였다.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가 심카 1100이라는 1천200cc, 4도어 해치백 스타일의 소형차를 만드는 것. 심카 1100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앞바퀴굴림에 독립 서스펜션을 써 큰 반향을 일으켰고 픽업 형태로 개조되어 미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 메이커 심카에서 자신의 디자인 열망을 채우기는 부족하다고 느낀 르퀘망은 1년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존 핀코라는 디자이너와 팀을 이뤄 ‘스타일 인터내셔널’사를 세우고 다양한 제품 디자인과 자동차 디자인의 용역을 받았으나, 당시의 정치적 혼돈과 경제상황 악화로 곧 문을 닫았다. 르퀘망은 그 뒤 유럽 포드에 입사(1968년)해 17년간 일했다. 포드가 세계 여러 지역에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덕분에 영국과 독일, 일본, 호주, 북미와 남미 등을 두루 돌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70~80년대 국내에 현대 브랜드로 소개되어 친숙한 그라나다와 마크4, 마크5 등 유럽 포드의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69년 영국에서 상용차와 특장차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르퀘망이 처음 맡은 일은 카고 트럭 디자인이었다. 당시 유럽 포드의 디자인 디렉터였던 우베 반센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르퀘망은 그의 배려로 영국 에섹스 대학 경영학과에서 2년간 공부하면서 디자인 경영자로서의 마인드를 갖추게 된다. 이후 유럽 포드에서 그가 실력을 인정받은 결정적인 계기는 1979년 독일에서 스포티한 감각의 새 승용차 시에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였다.

1985년 6월 미국 스튜디오로 발령이 난 르퀘망은 계약조건 등으로 회사와 마찰을 빚다가 때마침 폴크스바겐-아우디 그룹의 회장이었던 칼한으로부터 입사제의를 받고 이직을 결심한다. 이때 옮겨간 자리가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폴크스바겐의 어드밴스 디자인&전략 센터이다. 그가 최근 10년간 르노 디자인에서 보여주고 있는 절제된 감각은 이 시절 폴크스바겐 디자인센터 근무를 통해 얻은 것이다.

폴크스바겐으로 옮긴 지 2년만인 1987년 르퀘망은 우연한 기회에 르노의 스타일 연구소를 방문하고, 디자이너가 자유로운 발상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는 그곳의 분위기에 매력을 느껴 다음해 1월 다시 한 번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 르노에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이전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할 새로운 스타일 라인업을 정립하는 것. 그 결과로 나온 차가 1993년 생산된 소형차 트윙고와 94년의 소형 상용 밴 캉구, 96년 미니밴 메가느 세닉, 98년 미니밴 에스파스 등이다.

르노의 중형차 메가느의 플랫폼을 써서 만든 미니밴 메가느 세닉은 당시 일본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MPV 장르를 유럽차에 처음 접목시킨 사례로 기억된다. 르퀘망의 앞선 안목과 르노의 빠른 대응으로 이후 수년간 유럽에서 경쟁차종을 찾아볼 수 없었고, 유럽에서 MPV 붐이 일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르퀘망은 또한 라쿤, 아르고스, 팡게아, 벨사티스, 콜레오스로 이어지는, 다른 어떤 메이커보다 다양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컨셉트카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확립함과 동시에 르노의 이미지를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브랜드로 바꿔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위의 컨셉트카 디자인은 르퀘망의 강한 의지로 대부분 양산모델에 반영되어 1995년에는 고급 세단의 제안이었던 이니샬이 라구나2로 이어져 뒷모습에 그대로 쓰였고, 아방타임과 벨사티스 역시 컨셉트카 디자인을 거의 살려 양산차로 개발되었다.

르퀘망이 만들어낸 르노 디자인의 인기 비결은 남유럽의 열정과 북유럽의 절제되고 강한 디자인 경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디어와 컨셉트의 퀄리티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르노의 모든 디자인에 자신만의 독특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1999년에는 르노 회장 루이 슈웨체르의 제안으로 르노가 새로 인수한 닛산자동차와 르노 두 브랜드의 디자인을 르퀘망이 모두 총괄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1년의 절반은 프랑스에서, 나머지 반은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르퀘망은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여러 가지 디자인상을 받았다.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산업디자인 그랑프리를 수여받았고, 96년에는 센트럴 잉글랜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또 98년 동 대학에서 명예훈장(Ordre National)을 받았다. 그는 현재 산업디자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Ecole Nation-ale Suprieure’ 미술대학의 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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