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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로위 Raymond (Fernand) Loewy ( 1893 ~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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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1:31 조회15,5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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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자인 1세대를 대표하는 레이먼드 로위는 20세기 산업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디자인한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포장의 밝고 명쾌한 이미지는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심벌이 되었다. 스튜드베이커 아방티로 카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BMW의 로드스터 507과 재규어, 링컨, 캐딜락 등 많은 명차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로위는 자동차와 선박, 기관차, 항공기 등의 제품뿐만 아니라 엑손, 쉘, 영국정유 등 오늘날에도 유명한 기업체의 대표적 심벌을 디자인했다. 로위의 디자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유선형’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레이몬드 로위를 비롯한 미국 기계시대(1918~1941)의 디자이너들은 진정한 전위예술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디자인한 많은 제품들은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1930년대 국제 무역경쟁이 심화되면서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디자인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다. 각 기업들은 디자이너를 발굴, 활용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30년대 후반 미국의 근대 디자인 과정에서 성장한 디자인 1세대들은 바늘부터 기관차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9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에드먼드 로위는 에꼴 드 라뉴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단돈 50달러만 주머니에 넣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 동부에서 유명 패션잡지인 <보그>에서 일러스트와 웨스팅하우스의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1920년대 후반 산업디자인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새로운 소비주의와 산업적인 생활 양식의 전개는 미적 감각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고 이에 맞춰 산업화 사회를 수용하는 디자인이라는 기계미학이 출현한 것이다. 당시 근대적 의미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특성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출발해 차차 자신의 스튜디오에 직원을 채용하면서 컨설팅 회사로 발전해 나갔다.

1929년 레이먼드 로위는 ‘로위 디자인’을 설립해 글로벌한 디자인 컨설팅 사업을 펼쳐 나갔다. 그는 당시 디자인의 영역 구분이 없던 시기에 제품디자인, 운송기기 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었고 직접 디자인한 수많은 식품과 음료의 상표와 포장 등이 히트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포장의 밝고 명쾌한 디자인은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심벌이 되다시피 했다. 그가 디자인한 많은 제품들은 20세기 최고의 제품으로 불리며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운송기기 디자이너로 기억하고 있다. 1940년대부터 100만 파운드 규모의 S-1 증기 기관차를 비롯한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미국의 수많은 기관차들과 정겹고 맵시 있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를 디자인해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인정받게 된 계기는 1962년에 ‘유선형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았던 스튜드베이커의 승용차 아방티(avanti)를 디자인하면서부터이다. 1961년 경쟁사에 비해 디자인이 낙후되어 고민에 빠졌던 스튜드베이커의 사장 셔우드가 새차의 디자인을 ‘로위 디자인’에 의뢰하자 로위는 동료인 로버트 앤드류, 존 이스테인 등 3명과 2주간 팀을 구성해 합숙을 하며 1/8 스케일 모델을 만든 것이 아방티가 되었다. 그러나 새차가 발표된 이듬해 스튜드베이커가 경영위기로 문을 닫자 아방티 역시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2년 뒤인 1965년에 ‘아방티 모터 코퍼레이션’이 설립되어 다시 빛을 보게된다. 원가 문제로 4개의 헤드램프가 2개로, 2인승이 4인승이 되기는 했으나 디자인 이미지는 그대로 살렸다.

아방티는 노 그릴 디자인의 혁신적인 스타일 외에도 파이버글라스 보디, 짧은 오버행 등 새로운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꼽히는 스튜드베이커 스타라이너(starliner) 쿠페는 일명 로위 쿠페로 불리기도 한다. 이 차는 50년대 미국차의 유행이었던 테일핀의 원조이고 유러피언 감각을 지닌 미국차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스튜드베이커가 생산한 차 외에도 BMW의 로드스터 507과 재규어, 링컨, 캐딜락 등 많은 명차들이 로위의 손을 거쳐갔다. 그가 만든 유선형 스타일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1930~1950년대 미국의 디자인계를 선도해 나갔다. 유선형은 냉장고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어즈사를 위해 디자인한 ‘콜드 스팟 수퍼 식스’는 유선형 차의 디자인을 냉장고에 써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만의 독특한 스케치 기법은 컬러 색지 위에 속도감 있는 작은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1960년대 그는 백악관에 들어가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을 새롭게 꾸몄으며 그의 조수 프랭크 주디스와 함께 당시 보잉 707 대통령 전용기와 콩코드 여객기의 형태와 실내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내좌석, 플라스틱 패널, 간접 조명, 인체에 알맞은 의자, 통합 고객 서비스와 아늑한 색채 계획 등을 위해 1대1 스케일의 비행기 실내모형을 수 십 개 만들어 실험, 완성하기도 했다.

로위는 1941년 영국 왕립미술협회에서 ‘디자인을 통한 판매’라는 강연을 하면서 미국 산업 디자인의 성공사례를 영국에 알린다. 런던에 그의 디자인 사무실(런던 지사)을 개설하고 회사 간부, 건축가, 플라스틱 전문가, 엔지니어, 비즈니스 심리학자, 마케팅 전문가 등을 포함한 약 70여 개의 영국 회사를 상대로 디자인 컨설팅을 하였고 이때부터 미국적인 ‘디자인 비즈니스’가 영국에 영향을 주어 영국에서도 디자인 전문회사가 생기게 되었다.

로위가 근대 사회에 물려준 교훈이 있다면 기업들에게 좋은 디자인과 스타일이 더 많은 제품을 판매케 한다는 사실과 디자이너의 컨설팅 능력은 판매 곡선을 향상시킨다는 믿음을 고취시킨 것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라이프> 매거진이 로위를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00인’ 중 하나로 포함시킬 정도로 미국 산업에 그가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가 설립한 로위 디자인사는 딸인 로렌스 로위가 CEO로서 현재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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