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는 인연이 깊은 회사들이다. 1931년 롤스로이스가 벤틀리를 인수하게 될 뿐 아니라, 롤스로이스의 설립자 헨리 로이스(Henry Royce)와 벤틀리의 설립자 월터 오웬 벤틀리(W.O.로 통함)가 일을 시작한 곳이 똑같이 영국철도청(Great Nothern Railway)이었던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인연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듯 하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로이스에 비해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벤틀리는 클리프톤 대학(Clifton College)에 다니다가 16세에 당시 4-4-2 애틀란틱 증기기관차(4-4-2 Atlantic Locomotive) 디자이너로 유명한 헨리 이바트(Henry Ivatt) 밑에서 일하기 위해 영국철도청에 입사했다.

렉스 오토바이크

당시만 해도 기관차의 지지자였던 벤틀리는 '자동차는 사람들에게 진흙탕물이나 튀기는 쓸모없는 도구'라고 하찮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보다 오토바이크와 자동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1909년 5마력 렉스(Rex) 오토바이크를 몰았고, 1910년 그의 첫 차인 중고 라일리 V 트윈(Riley V-twin)을 구입했다.

이후 국립자동차택시회사(National Motor Cab Co.)에서 근무하다가, 1912년 프랑스의 DFP라는 차를 수입, 판매하던 동생 호레이스(Horace Milner Bentley)와 동업을 시작함으로써 자동차 산업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DFP 경주차

그는 동생과의 동업 이후 DFP의 엔진 피스톤을 88% 알루미늄, 12% 구리로 보다 가볍게 교체하여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2리터 엔진으로 144.3kmh라는 굉장한 속도를 내기도 했다.

벤틀리 크리클우드 공장

한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알루미늄 피스톤 기술을 이용해 비행기 엔진을 연구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1919년 드디어 '벤틀리(Bentley Motors Ltd.)'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처음부터 자금이 너무나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첫 모델도 2년 후인 1921년에야 출시됐다. 그리고 첫 모델 3리터(3-liter)를 선보인 이후에도 계속 자금 사정은 좋지 않아서 결국 1925년 백만장자 스포츠맨이었던 울프 바나토(Woolf Barnato)가 회장으로서 경영권을 갖기에 이르렀고, 회사의 경영자가 바뀐 이후 동생 호레이스는 회사를 떠났다.


 

울프 바나토(왼쪽)

울프 바나토의 자금 수혈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후반부터 경제공황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급기야 바나토도 1931년 자금 공급을 중단했다. 같은 해 완전히 자금이 끊긴 벤틀리를 롤스로이스가 인수하였고 월터는 롤스로이스의 고용인이 되어 일했지만 자동차 디자인과는 상관없는 일들이었고, 이에 불만이었던 그는 1935년 회사를 그만 두고 '라곤다(Lagonda)'社로 옮긴다. 라곤다에서 V12 엔진과 2리터 DOHC 엔진 개발에 관여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회사를 그만 두었다. 자동차 산업에서 은퇴한 그는 '벤틀리 드라이버 클럽'같은 소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영국의 '빈티지카(vintage car: 영국적 기준으로 1919-1930년 생산된 모든 차량)' 시대를 대표하는 벤틀리라는 메이커를 창설한 월터 오웬 벤틀리는 1971년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