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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포르쉐 Ferdinand Porsche (1875~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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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3:00 조회14,7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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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부탁을 받고 만들어낸 딱정벌레를 닮은 자동차 폴크스바겐과 현대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독일의 포르쉐는 자동차 설계의 천재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걸작품들이다.
1875년 9월 3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북부 보헤미아의 마페르스도르트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전기를 좋아했던 포르쉐는 15세때 자기의 집안에 전등불을 만들어 그의 집은 보헤미아에서 최초로 전등불을 켠 집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비엔나 공업대학의 청강생으로 공부하던 어느날 빈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였던 지그프리드 말커스의 자동차(1874년 발명)를 보고 자동차 설계의 꿈을 갖는다.
그는 벨라 에게르라는 전기기계 제작소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하여, 1899년 마차 제조에 이어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유명해진 야콥로너사 시험부서의 지배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여기에서 포르쉐박사는 전기 및 전기.휘발유 겸용차(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참여 했고, 189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그가 만든 전기자동차 "로나 포르쉐 1호"를 전시, 큰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는 비엔나 노이스타트에 있었던 오스트로-다임러사에서 자동차를 설계하게 되었는데 소형 스포츠카 '샤샤'를 비롯, 성능이 우수한 자동차를 설계해 자동차 경주에서 여러번 우승하였다. 또 그는 자동차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비행기 엔진까지 설계하였으며, 7년뒤 만든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은 현재의 포르쉐와 폴크스바겐 엔진의 조상뻘이다. 또 그는 설계자로서의 위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1909년 직접 만든 차를 몰고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직렬 4기통 5.7리터 엔진을 얹은 마야 자동차는 프린스 헬리 트라이얼에서 1,2,3위를 차지 했다. 다임러사와 벤츠사가 합병된 뒤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메르세데스 벤츠 K,S,SS,SSK,SSKL 등을 만들어 내었고, 그중 벤츠 SSKL은 당시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유럽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차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시민권을 지녔던 그는 1938년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강제로 독일 시민이 되었다.  1930년 55세가 된 포르쉐는 자기자신의 독립 업체인 포르쉐 설계회사를 차렸는데 '명예공학박사 F포르쉐 유한회사, 자동차 및 엔진개발사무소'라는 긴 이름이었다.  그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히틀러로부터 부탁받은 딱정벌레형 국민차 폴크스바겐을 만들게 되었으며,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탱크와 군용장비를 설계하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2차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자 전범으로 2년형을 언도 받아 수감생활을 하였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뜻이 반영된 스포츠카를 생산하기도 결심하게 되었다.
1948년 그의 아들 페르디난트 안톤 에른스트(보통 페리 포르쉐라 부름)는 아버지와 칼 라베의 조언을 받아 폴크스바겐의 부품을 기초로 설계한 포르쉐 356을 만들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성공을 직접보지 못하고 1951년 뇌일혈로 쓰러져 스튜트가르트의 마리안 병원에서 사망한다.
한편, 포르쉐는 1999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있었던 세기의 차 선정위원회에서 20세기 최고의 엔지니어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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