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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borghini (람보르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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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0-16 15:50 조회10,655 회 댓글0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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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이탈리아
설립연도: 1963
설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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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 미우라(Miura)를 비롯하여 카운타크(Countach), 디아블로(Diblo), 무르치엘라고(Murcielago)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수퍼카 메이커 람보르기니의 전설은 1963년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에 의해 시작되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1916년 4월 28일 이태리 볼로냐 인근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는 가업인 농사에는 뜻이 없었고 기계 만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볼로냐에서 공업디자인을 수료하였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입대하여 그리스 로도스(Rhodos , Greece)에서 운송 유닛에 복무하면서 차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게 되었고, 전후에는 고향에 돌아와 군용차를 개조하여 트랙터를 만들어 팔았다. 전후 복구를 위해 당시 이태리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트랙터라 만들면 팔려 나갔고 이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그는 1948년 센토(Cento)에 있는 워크샵을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트랙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그가 직접 디자인한 디젤엔진을 얹은 트랙터를 생산하였고 이후 이태리에서 가장 큰 트랙터 생산자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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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로 크게 성공한 페루치오는 1960년 히터와 에어컨 장비로 일약 백만장자의 길에 들어섰다.
돈에 대해 자유로웠던 그는 평생 숙원 사업이었던 헬기 제작을 하고자 했지만 정부의 불허로 포기하고 또 하나의 큰 영역인 자동차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62년에 페라리 250GTO 엔진을 디자인한 비자리니(Giotto Bizzarrini)를 끌어들여 이듬해인 1963년 250엔진보다 훨씬 발전된 모델인 350GT 엔진을 개발하여 그 해 10월 튜린 모터쇼에 드디어 람보의 첫차인 350GTV를 선보인다. 360hp 트윈 캠샤프트 V12 엔진은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고, GTV의 양산 모델인 350GT가 1964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페라리, 모건, MB, 재규어 등 스포츠카를 소유하고 있었던 그가 시작한 부문이 스포츠카인 것은 당연하겠지만 람보르기니라는 수퍼 황소를 만들어 낸 뒷단에는 믿거나 말거나 설화가 있다.

어느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인근에 있는 마라넬로의 페라리에 가서 엔초 페라리에게 자신이 새로 구입한 페라리차의 변속기 소음이 심하다고 불평했다가 페라리로부터 `나는 자동차를 만들테니, 당신은 트랙터나 잘 만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 그러면 한번 해보자! 누가 더 좋은 차를 만드는지" 라는 일념으로 람보르기니를 시작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전설의 명차, 세상에서 가장 비싼 클래식카 250GTO를 디자인 한 엔지니어를 데려다 한단계 뛰어난 350GT를 만든 것을 보면 야사를 믿어도 괜찮을 듯.

람보르기니를 수퍼 스포츠카라는 메인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시킨 모델은 미우라로 미우라는 투우 중 최고종자의 이름으로 가축을 좋아했던 람보르기니가 붙인 이름이다.

미우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베로토네와 간디니가 디자인 한 환상적인 수퍼 스포츠카이다. 당시 획기적인 가로배치 370마력 V12을 엔진을 장착한 미우라는 0→100이 6.2초에 최고 280km/h의 속도를 지닌 당대 최고의 GT카로 어떤 전문가는 미우라가 수퍼카의 시작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어서 에스파다(Espada), 이오타(Jota), 자라마(Jarama), 잘파 (Jalpa) 등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모델과 람보르기니 최고의 모델로 손꼽고 있는 카운타크, 이어 후속 디아블로, 무르치엘라고, 2003년에는 무르치엘라고의 축소판이며 Baby 람보르기니라 불리는 갈라르도(Galardo)가 람보르기니의 대를 잇고 있다.

1972년 페루치오가 지분의 51%를 스위스 사업가에게 넘겨준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람보르기니사는 1998년 아우디에 흡수되었고 아우디가 폭스바겐 그룹에 넘어간 이후 폴크스바겐 산하 디비젼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1993년에 사망하였다.
람보르기니의 심볼인 투우(fighting bull)는 람보르기니가 태어난 별자리가 황소자리여서 페라리의 말처럼 심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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