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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ari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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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0-10 10:58 조회5,6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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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이탈리아
설립연도: 1939
설립자: 엔초 페라리
Homepage: http://www.ferrari.it
  
'
경마(race)가 종자를 개량시킨다.'는 서양 속담은 자동차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페라리'는 탄생 이전부터 자동차 경주를 통하여 다듬어지고 개선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그러한 전통은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다.

1920년대 초반에는 알파 워크스 팀의 드라이버(미케닉도 겸함)로, 1929년 이후에는 자신이 창단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드라이버로 활약하던 엔초 페라리는 1933년 아들 알프레도(디노로 더 잘 알려짐)가 태어나자 아내의 뜻에 따라 드라이버 생활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 경주에 대한 그의 못말리는 열정은 비록 스티어링휠은 놓았어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가 창단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1930년부터 40년까지 343회 출전에 우승 124회, 2위 82회, 3위 68회의 기록을 남겼다. 페라리팀은 알파의 차로 경기를 했으며 경주차에 그려진 '노란 방패 속에 앞발을 쳐든 흑마'가 있는 팀의 문장으로 알파 워크스의 차들과 구분 되었다.

1939년, 페라리는 그의 이름을 담은 차를 직접 만들어 경주를 계속한다는 계획으로 모데나에 Auto Avio Costruzioni를 설립했고 이것이 현재 페라리사의 시작이다. 양산차를 만들어 판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주 자금 조달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결별 후 4년 동안 페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알파와의 계약으로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1940년 처음 만든 차에는 페라리라는 이름을 쓸 수 없어 815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페라리 이름의 사용을 금하는 계약은 2차 대전으로 자연히 해소되었다.

마라넬로 공장(1943년 이전)은 전쟁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 엔초는 공장을 재건하고 자동차 생산과 경주 참여를 재개했다. 노란 방패 속에 있던 흑마는 역시 노란 바탕인 직사각형 속으로 자리를 옮겨 페라리의 배지가 되었다. 1947년 V12를 얹은 경주차인 Tipo 125S가 제작되었고 1948년에는 그들 최초의 양산차인 Tipo 160이 소개되었다. 125, 160 등의 숫자는 기통당 용적를 나타내는 것으로 한동안 페라리는 차이름에 이 방식을 사용하였다.

1948년 166 인터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의 F550 마라넬로와 F550 바르께따 피닌파리나에 이르기까지 페라리의 GT카들은 세계 자동차광들의 스피드와 특별함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경주를 통해 축적된 경헙과 기술에 더해진 이탈리아 특유의 열정은 페라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차로 존재할 수 있는 바탕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들어 회사의 경영이 난국에 처하자 페라리에 맨 처음 손을 뻗친 회사는 미국의 포드였다. 하지만 포드와의 협상은 진전이 없었고 여기에 이탈리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작용하여 결국 피아트에 지분 50%를 넘기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1969년의 일이다. 여기에는 독선적이고 괴팍한 엔초의 성격도 한 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의 페라리는 피아트 산하의 마제라티에 모든 지분이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피아트사의 방침은 페라리의 전통은 존중하는 것이어서 페라리 차들은 아직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고 있다. 현재 엔초의 유일한 피붙이인 피에로 라르디-페라리가 - 큰아들 디노는 1956년 선천성 근육병으로 사망했다. -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 페라리 뱃지

'노란 직사각형 안에서 앞발을 쳐들고 있는 흑마'는 페라리의 상징이다.

1923년 드라이버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엔초는 라베나에서 열린 사비오 써킷레이스에서 우승한 후 엔리코 백작과 만나게 되었고 후에 그는 백작부인인 파올리나에게 소개되었다. 백작 부부에게는 프랑세스코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로 영웅 중의 영웅이었으나 1차 대전 중 격추당하여 생을 마감했다. 파올리나 부인은 페라리에게 아들이 생전에 비행기 동체에 그리고 다녔던 '앞발을 쳐든 흑마'를 그의 차에 사용한다면 행운이 있을 것이라며 이의 사용을 권하였으며 엔초는 이를 영광으로 생각했다. 이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엔초가 자신의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단한지 삼년 후인 1932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페라리는 이의 바탕색으로 모데나의 상징색인 카나리아색, 즉 노랑색을 선택했다. 프랑세스코의 비행기 동체에 그려진 흑마는 그가 속했던 비행단의 상징물이었다. 이 때문에 파올리나 부인이 이 공적 상징물을 페라리에게 사용토록 권유하고 부여했다는 점에 대해 분분한 이견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논의는 백작 부인에게 그럴만한 권리가 있었느냐는 데까지 미친다.

또 다른 설도 있다. 프랑세스코는 50 대 째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후 에이스 칭호를 얻었다. 그는 이를 기념하여 적기에 그려져 있던 말 그림을 약간 변형하여 그려 넣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격추당한 프랑세스코의 50번 째 희생물은 독일의 비행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라리의 말과 포르쉐의 말이 거의 같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슈투트가르트의 상징인 말을 사용한 것이라 하며 실질적으로 '슈투트가르트'의 어원은 '암말의 정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프랑세스코의 50번째 희생물은 독일기라는 얘기가 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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