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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ysler (크라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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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0-09 17:15 조회6,0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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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미국
설립연도: 1925
설립자: 월터 크라이슬러
Homepage: http://www.chrysler.com/
  
1924년 어느날 뉴욕 커머더(Commodore) 호텔 로비에는 '크라이슬러 6'라는 이름의 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월터 크라이슬러에게는 그때가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사실 그는 그의 첫 차가 뉴욕의 오토쇼에 전시되길 희망하였는데 아직 생산에 들어간 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토쇼 전시가 좌절되자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첫 차 발표회를 하면서 오늘날의 크라이슬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영난을 겪고 있던 맥스웰-챠머(Maxwell-Chalmers)사를 기반으로 설립된 크라이슬러는 크라이슬러 6가 첫 해에 3만2천대가 팔리는 기록을 세우면서 창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1925년 6월 드디어 크라이슬러(Chrysler Corporation)라는 이름으로 회사설립신고를 하였으며 이듬해에 링컨, 캐딜락 같은 고급차와 경쟁할 임페리얼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회사의 몸집을 불려 나간다.

임페리얼 시리즈는 초기에는 4기통 3,044cc 모델과 6기통 3,582cc, 4,719cc의 3가지가 있었는데 27년 한해에 4만8천대 이상을 판매하면서 1954년까지 명성을 이어왔으며 54년 이후부터 75년까지는 하나의 디비전으로 독립하여 발전을 거듭하였다. 27년은 임페리얼 시리즈의 판매에 힘입어 총판매대수 18만 3천대로 1965년까지 가장 많은 크라이슬러가 판매된 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1928년에는 포드와 시보레의 값싼 차와 경쟁하기 위해 다지 브라더스(Dodge Brothers Inc.)社를 인수하여 비디전으로 둔다.

1931년에는 임페리얼 시리즈 중 백미라 불리우는 6,306cc의 CG 임페리얼(CG Imperial)을 소개하는데 이 차는 당시 미국차 중 가장 큰 차였으며 호화로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인기가 많았다.

1934년에는 디자이너 칼 브리어(Carl Breer)를 중심으로 비행기의 유선형 스타일에서 착상을 얻어 개발한 에어플로우(Airflow)가 6년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발표된다.

그러나 에어플로우는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진보된 스타일이었다. 프레임에 목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앞,뒤 3명씩 6명의 좌석모두가 휠베이스 내에 위치하여 안정감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어플로우는 3년을 못채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에어플로우의 실패 후 8기통의 사라토가(Saratoga), 뉴요커(New Yorker) 6기통의 로얄(Royal), 윈저(Winsor) 같은 모델들이 스티어링 칼럼식 기어와 세미 오토미션 같은 진보된 기술을 적용하여 연이어 소개되었다.

2차 대전 중이던 1941년에는 스테이션 왜건의 지붕을 곡선으로 처리한 스타일을 개발하여 타운 & 컨트리(Town & Country)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데 이때부터 왜건의 이미지가 형성되었으며 왜건 타입하면 크라이슬러가 손꼽힐 정도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50년 초에는 반구형(hemispher)의 실린더헤드를 가진 헤미(Hemi)형 엔진을 개발하면서 자동차업계에 마력증강 경쟁을 잠시 일으킨다. 51년에는 당시 같은 배기량의 캐딜락차보다 20마력 정도 출력이 높았으며 55년에 이르러서는 300마력까지 내는데 성공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해 '300 시리즈'를 발표한다. 포드 썬더버드(Thunderbird)의 경쟁모델로 개발된 300 시리즈는 뉴요커를 베이스로 하고 있으며 그릴의 모양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누어 지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1955년 모델 300은 52번의 NASCAR 경주에 참가하여 32번 우승하는 영광을 안았다. 1956년 모델은 300B 57년 모델은 300C, 이런식으로 65년의 300L까지 이어진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사이 크라이슬러는 대형차 위주로 생산 라인을 정비하고 해외사업 확장에 주력을 다하는데 이것이 크라이슬러 역사에 있어 가장 중대한 경영과실로 기록이 된다. 72년 세계경제는 오일쇼크를 맞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고 대형차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크라이슬러는 재고가 쌓이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파산을 선고해야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크라이슬러는 이런 위기에서 회사를 구하기 위해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 회장을 영입한다. 아이아코카 회장은 외적으로는 15억 달러에 이르는 정부구제금융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내적으로는 인원감축과 연봉삭감 그리고 K-카 프로젝트로 크라이슬러를 위기에서 구한다. 82년 르베이론(LeBaron), 디플로매트(Diplomat) 등으로 명명된 K-카는 크라이슬러 신화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아이아코카의 노력으로 재건에 성공한 크라이슬러는 84년 이탈리아 마제라티사의 지분을 16.5% 인수하고 87년에는 어메리칸 모터스(American Motors)社를 8억달러에 인수하여 지프(Jeep) 디비전으로 성공시킨다.

86년 다지 램(Dodge Ram)의 성공 이후 몇 년간은 가족용차 위주의 모델에 주력하였으며 92년부터는 사장인 로버트 루츠(Robert Lutz)의 주도로 바이퍼(Viper) 같은 스포츠형 모델까지 추가하게 된다.

바이퍼의 성공으로 루츠가 회장자리에 오르며 아이아코카는 명예로운 퇴임을 한다. 이후 세브링(Sebring), 어벤저(Avenger), 네온(Neon) 같은 차들이 성공하였으며 98년 5월에는 독일의 다임러-벤츠와의 합병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社로 새로 출범하였다.

지금은 복고풍 스타일로 성공한 PT 크루저(PT Cruiser)를 중심으로 300M, 콩코드(Concord), 보야져(Voyager) 같은 모델들이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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